iPhone6+ Multi-Touch ISSUE 수리 및 환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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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0월, 아이폰6+ 화면에 세로줄이 여럿 발생하고, 멀티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평소 휴대전화를 험하게 쓰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1년전 이미 리퍼를 받은 이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더욱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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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UBASE(아이폰 공인 서비스 센터)에 방문해본 결과, 액정 밑 터치패널을 조절하는 상단부 칩에 고장이 발생했다고 했다.

부분수리비 209,000원이 청구되었고 나는 부분수리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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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11월 중순),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 사례에 대해 179,000의 수리비를 부과한다는 정책을 공시했다.

기존에 서비스를 받은 고객들에게는 차액을 보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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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페이지에 '공인 서비스 센터'를 방문하라고 하여 UBASE에 재방문 하였다. 그러나 UBASE측에서는 지시받은 사항이 없다고 했다.(2016/11/21)

즉시 Apple Korea에 전화연결을 시도했다. 기존 수리내역이 있고 차액환불이 필요한 경우 굳이 서비스센터로 가지 않고 Apple Korea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답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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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원은 즉시 필요한 링크를 보내주었다. 수리내역서, 영수증, 계좌번호를 양식에 맞게 제출하였고 얼마후 차액을 입금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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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ISSUE로 수리를 받았거나, 수리가 필요하다면 이 경험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려둔다.

(아이폰6+만 해당된다. 6, 6s, 6s+는 해당없음.)





수료식 및 자대배치 전 날 아침, 180여 빡빡이들이 Whightman Hall에 앉아 자대선발을 기다린다. 나는 어젯 밤 배럭 안에서 본 이전 깃수의 전출표가 떠올랐다. 제법 많은 인원이 용산을 간다. 20%, 아니 약 30% 정도 될 까. 아, 그래 나는 용산이 아니어도 좋다. 그냥 저 밑에 대구나 군산 이런데만 가지 않으면 좋겠다. 거긴 너무 머니까. 자대배치는 추첨으로 진행되는데 추첨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돌리기 전에 교육생 몇명을 뽑아서 무대 위로 올린다. 이들이 부르는 숫자 몇개를 뽑아, 이를 난수발생기에 넣고 돌린 프로그램의 결과로 교육생들의 자대를 정한다. 물론 그 전에, 각 부대별로 필요한 특수인원(전투병, 운전병 등)은 미리 뽑아둔다.


첫 예비추첨에서 '왜관(CAMP CARROLL)'이 나왔다. 너무 생소해서 들어본 적도 없는 지명, 주변에 물어보니 대구 바로 윗쪽이란다. 어쨌든 첫 추첨에서 아랫 지역이 나왔으니 두번째 추첨에선 다른 곳이 나오겠지. 대구나 군산만 아니면 좋겠다. 용산이면 가장 좋겠지만, 그래도 시설 좋은 평택이나 성남도 괜찮겠다. 정 아니라면 지하철 닿는 의정부도 괜찮겠다 싶었다.


정식추첨, 나의 자대는 변하지 않았다. 경북 왜관, 미 1통신여단.


들어본적도 없는 곳으로 자대는 정해졌고, 서울에서 약 300km 떨어진 곳이었다. 통신병으로 배치받아 특기는 나름 괜찮게 받았다지만, 경북이라니, 왜관이라니,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역에서 남은 19개월을 보내야 하다니. 나도 나지만, 나와 교육대에서 같은 방을 쓴 룸메이트 친구는 토익 990을 맞고 왜관 헌병으로 배치를 받았다. 보통은 어학병으로 반드시 빠진다고 하는 점수에, 카투사로서는 다소 불편한 헌병보직을 받다니. 내가 괜한 투정을 부리고 있었구나.


좋은건지 나쁜건지, 왜관과 대구로 떠나는 인원들은 가장 먼저 버스를 타고 캠프 잭슨을 나선다. 훈련소와 교육대의 두달을 함께 한 동기들과 본격적인 작별을 한다. 나중에 꼭 다시 보자는 약속을 하고는 애써 담담한 척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3시간이나 달려 또 다른 미군부대에 떨어진다.


이재혁 이병! 이재혁 이병!

이병 이재혁!


관등성명은 무조건 크게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반쯤 언 몸으로 나를 부르는 선임을 찾아간다. 엄마닭을 찾는 병아리들처럼 다른 동기들도 하나 둘 각자의 선임 품을 찾아 가기 시작한다. 나의 맞선임으로 추정되는 이등병이 나를 데려와서는 배럭으로 데려왔다. 생각보다 좋은 배럭, 뭔가 유인물 같은걸 나눠준다. 기본 생활수칙이나 관등성명, 부대 기본 사항 같은 것들이었다. 아, 공부할 것들이 많구나. 내가 속한 부대는 카투사가 7명이 전부인 작은 독립부대였다. 미군이 많아서 공부하기 쉽겠구나, 카투사들이 적어서 이름외우기는 쉽겠구나. 미군이 많아서 영어공부좀 할 수 있겠구나.

그땐 그냥 그래서 편할 줄 알았다.


교육 시킨거 맞아? 제대로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네 ...


첫 날 밤의 포메이션, 나는 체에 거른 박력분마냥 곱게 아주 곱게 빻아지고 갈렸다. 탑처럼 쌓인 샴페인 위로 술이 흘러 내리는 것 처럼, 나를 향한 구박과 손가락질은 그렇게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A4용지 네 장 분량의 정보를 못 외워서, 관등성명 하나 제대로 못 해서, 그냥 신병이라서. 사실 그런 긴장속에선 그 누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곘다. 어쨌든 까이면서 배우는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땐 참 마음이 그렇게 여렸던 것 같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방에 돌아와 누웠는데 괜히 외로웠다.




선임이 준 알람시계 덕분에 시간 맞춰 일어날 수 있었다.  0630 Reveille(기상나팔)이 울리기 때문에, 포메이션엔 0620까지 대기해야한다. 모든 약속에 이렇게 10분 먼저 대기를 해야 하는데, 이를 10 minutes priority 라고 한다 나는 신병이기때문에 이보다 10분 더 일찍 나온다. 나오는 선임들마다 인사를 했다. 새로운 부대원들 앞에서 소개를 받았고, 미군들은 나를 몇 달 동안 Baby KATUSA 라고 불렀다.


아침 PT를 마치고 내 site로 출근했는데, 왠지 저 사람은 한국군복을 입고있다. "미군 부대 내에서 한국군도 근무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분이 옆애 와서는 장난스레 툭 치고 간다.


나는 형이라고 불러도 돼, 먼저 갈 게 안녕~


나는 2012년 6월 21일 전입을 들어왔고, 그는 2012년 6월 22일에 전역했다. 내가 저렇게 한국군복을 입고 이곳을 나가려면, 아직 600일도 더 남았구나. 전역하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보다, 나의 앞길에 대한 막막한 부담감이 더 앞선다. 저 사람이 여길 나가는게 부러운게 아니다. 내가 저렇게 되려면 겨울이 두 번이나 지나야 한다는 막막함이 나를 누를 뿐.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site에는 그 다음으로 전역을 2달 앞둔 병장 카투사가 한 명 근무하고 있었고 미군은 기본적으로 SGT(E-5)이하로는 명령-복종의 관계는 아니기 때문에(예의는 지켜주는 것이 도리) 나는 나름대로 "풀린 군번" 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J : 야, 자소서에 군대얘기하면 무조건 떨어져.

L : 진짜? 이미 냈는데?


자기소개서에서 대답해야할 질문 항목들이라는 것들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1. 희생을 각오하고 타인이나 소속된 단체를 위해 행동한 경험을 기재하여 주십시오.

2. 가장 열정/도전적으로 임하였던 일과 그 일을 통해서 이룬 것에 대해 기재하여 주십시오.


이것 참 통탄할 노릇이야. 대한민국의 20대들을 다 모았을때 어떤 단체에 심각하게 깊게 관여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또 그중에 아주 빛나는 희생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나는 조금 특별한 군대를 나온 덕분에 군대 얘기를 쓸 수 있었다. 아니 군대 얘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내가 겪은 일중엔 위 질문에 가장 부합하는 경험이었으니까. 스물 다섯남짓 한 우리에게 어쩜 그리도 바라는게 많을까?

많은 기업들의 신입채용은 "우리는 20대 중후반의 창의적인 인재를 원합니다! 그런데 경력 많이 있으면 좋겠네요!" 를 표방한다. 우스갯소리로 시작했는데, 이젠 너무 사실이라 웃을수도 없다.  물론 실제로 그런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각종 영상매체나 SNS에 나오는 그러한 청년 성공사례등을 보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 봐, 젊으면 저렇게 다 할 수 있는거야!" 라고 한다. 심지어 강단에 선 사람조차도 그렇게 말한다. 너도 할 수 있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네가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에 강사로 나가거나, 과외를 할 때, 어린 친구들앞에 선 나는 이런 말을 해줬다. "야, 아무나 못 하니까, 특별하니까 TV에 나오는거야", "니들은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 아니 그럴 확률이 매우 많지. 그러니까 부지런히 무언가 해야하는거야." 라고.

현실감 팍팍 들어간 이런 불평을 백날 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어쨌든 기업은 더 좋은 인재를 뽑고싶어하니까, 화려한 삶을 살지 못한 내 탓이지. 경험이 없는 내 탓이지. 자소서는 전산을 타고 이미 넘어갔고, 초조한 한달이 지났다.


"서류전형 합격, 인적성검사 공지"




벚꽃잎의 은하수가 하늘에 날리는 4월, 인적성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 참 쓸쓸하다. 전형에는 있지도 않은 역사에세이를 준비해서 갔으니, 준비가 얼마나 안 됐는지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시험장을 나와 지하철역을 향해 걷는 길에 벚꽃잎이 가득 흩날린다. 내년엔 내 이력서가 저만큼 흩날리겠지. 영역당 네다섯 문제씩은 다 비우고 나왔는데, 한 달 뒤엔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적성같은건 그냥 PF정도만 보고, 자소서 위주로 따지는 모양이구나. 이 회사는 학점으로 본다더니 대충 그랬는 모양이구나. 면접은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였고, 그 많은 사람들중에 나만 벌벌 떨었다. 발표는 나름 잘 했는데(그저 형식적으로만), 나같아도 나를 붙여줄 진 모르겠다. 회사에 지원한 놈이 관련 경험은 전혀 없고 전시회나 한두번 가본게 전부라니. 부끄러운 발표를 했구나.

마지막 포트폴리오 발표에선 면접관이 내 기분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는지, 당황스런 질문을 했다.


면접관1:  여자친구는 있나요?

나 : 아뇨, 아직 없는데요.

면접관1 : 회사 오면 더 없을텐데? 하하

나 :


약간 상했다. 다행히 떨린건 덜 했다. 영어면접+인성면접+포트폴리오면접, 뒤돌아 생각해보니 어느하나 크게 밉보인건 없었다. 그래서 인턴 기회를 줬나보다. 메르스의 여파로 일정이 많이 뒤로 밀렸고, 단축된 인성연수를 받았다. 모 여대에서 했던 인성캠프는 최악이었다. 매년 이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걸 장기코스로 진행하고 외부 기업에서도 제법 사람을 맡기는 모양이다. 내부 피드백을 통해 인성캠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간다고 하는데, 캠프를 진행하는 3일동안 느 부분에서 인성을 평가하는지, 이런 방법으로 어떻게 개인의 인성을 쉽게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많이 가는 커리큘럼이었다. 평가받는 입장에서는 객관성이나 전문성을 느끼기 어려웠다.




4주동안의 인턴생활이라 함은 참으로 애매모호한 것이다. 바쁜 현업에 묻힌 팀원들에겐 무엇 하나 물어보기 참 미안하다.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친절히 알려주는데, 학부생과 현업 종사자의 수준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 100을 들으면 30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다. 아, 드라마 "미생"은 제법 좋은 직장을 보여주는 것이었구나! 혼자 공부할 것이 많았고, 나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연구장학생 전형이라는것이 지난 기수까지는 100%에 가까운 합격률을 보장해주었지만, 이번 기수부터는 아니라는 소문이 돌았다. 80%, 70%, 아무도 모른다. 인턴을 하면서도 불안감은 더해가고, 개인과제 준비하랴 팀프로젝트 준비하랴 총알같은 4주는 그렇게 지나갔다. 사람도 좋았고 회사도 좋았는데... 아무리 좋은 사람이 많아도, 사람이 모여서 그룹이되고, 팀이 되고 더 크게는 기업이 되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를 보았다. 현실은 생각보다 답답하고 복잡했다.

인턴이 끝나면 보름만에 나온다고 했던 결과발표는 질질 끌고 또 질질 끌어 한달 하고도 한 주가 넘어서야 나왔고, 나는 최종탈락했다모두가 예상하고있던 80%의 채용률에 훨씬 못 미치는 약 50%의 인원만이 연구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동기들이 있는 단체 메신저 방에선 위로와 축하의 말이 오간다. 우리는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없었고, 진심으로 위로받을 수 없었다.




나는 취업이 간절했지만, 그게 꼭 이 회사일 필요는 없었다. 아, 물론 국내 최고의 연봉과 복지, 근무조건을 가진 회사이긴 했다. 분하지, 암. 여길 못 가다니. 회사가 날 떨어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회사의 분야와 관련된 열정이나 경력이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원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을 바랬던 까닭일까? 수많은 능력자들 중에 조금 덜 돋보였을 뿐일까? 협력과 소통이 중요한 그룹에서 돋보이려고 발버둥쳤던 까닭일까?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이유를 알 수는 없겠지만, 결과는 탈락. 떨어졌다. 


.그래, 좋은 경험 했다.


사실 이 말 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 항상 결과가 모든 걸 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자꾸 뭘 겪고 떨어지고, 또 남이 못 하는걸 해보고 못 얻는걸 얻어보고, 이렇게저렇게 살다보면, 사람 사는게 그런게 단순한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앞으로 몇번은 더 떨어질텐데 벌써 이렇게 힘들어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1. 연구장학생 2015.09.22 14:04 신고

    저기혹시 현대자동차 연구장학생 내셨던거세요?? 이번에 저도내서 글쓴이님의 글보고 댓글남겨요.. 답변기다릴께요 ㅠㅠ


 

  이 포스팅은 2015년 1월 5일부터 1월 29일까지 있었던, 삼성 드림클래스 2015년 겨울캠프 - 충남대 캠프의 이야기입니다.



학생입소

  1월 8일. 하루 먼저 캠프에 도착해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한 후 다음날인 1월 9일, 우리는 충청권 전역에서 오는 아이들을 맞게 되었습니다. 수업강사 111명, 파견직원 7명과 진행강사 13명, 학생 약 370명, 총 약 500명. 전국 최대규모의 캠프인만큼 정말 많은 학생들이 이날 입소했습니다.



< 찍을때는 몰랐던, 저 멀리 보이는 우리반 학생 지환이 >



<작전타임?>



<작전타임2?>



<대학교 캠퍼스에서의 첫 밥을 먹으러 가는 길>




* 캠퍼스

  저는 충남대 캠퍼스를 이번 캠프에서 처음 걸어봤는데, 정말 커도 너무 큽니다. 걷고 또 걷고, 또 걷고... 학생과 강사는 주로 1동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이 기숙사는 캠퍼스 내 제일 깊은 곳에 있습니다. 학생들의 강의를 듣는 백마홀은 정문 바로앞, 수업을 듣는 백마교양교육관은 또 그 사이에 있습니다. 보통 이 사이의 거리가 걸어서 20분. 캠프가 끝나면 아이들이 튼튼해지기는 할 것 같습니다. 밥먹고 금방 배가 꺼지는게 문제이기는 합니다..


* 환영식

  삼성사회봉사단 박근희 부회장님, 교육부 김신호 차관님이 내빈하여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참고로 박근희 부회장님께서는 캠프기간동안 총 3번이나 충남대를 방문해주셨습니다.(쿨가이..)




  차인표라는 멋진 별명의 민용식 팀장님. 삼성디스플레이에서 파견오셨습니다.



< 2- 19 첫 단체사진>



  1주차 생활표는 대부분이 특강 및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양한 강사님들 및 유명인사분들이 오셔서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조언과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첫 날에는 그렇게도 얼어있더니, 며칠 봤다고 긴장이 풀리는 녀석들



<열심히 수업하시는 강사님>


< 학생 수업준비에 여념이 없으신 강사님>




*강사대기

  캠프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이전 캠프까지만해도 본인 수업 외의 시간이 제법 자유로운 편이라 대학생 수업강사의 자유도가 제법 높은 편이었습니다. (간단한 게임이나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약간) 그런데 지난 캠프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는지 이번 캠프부터는 여러 방면으로 행동의 제약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아니지만 다소 아쉽고 또 답답했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워낙 많으니 또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수업진행

  또한 선행학습급지법으로 인해, 일부 교재가 심화학습을 위한 교재로 변경되면서 많은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캠프에 오는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는 학생도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도 있어서 한 반이 편성 되면 10명의 학생의 수준이 모두 천차만별이라 10명을 데리고도 수준별 학습을 진행해야 합니다.(대체로 중하위권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기는 합니다.) 허나 이번 캠프의 영어교재가 일반 학생들이 느끼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책으로 선정되면서, 학습이해도가 다소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적지않은 어려움이 느껴져, 강사님들께서 정말 많이 수고해주셨습니다.

(거의 새로운 부교재 하나를 만드는 수준의 고통을 겪으신, 전국 캠프의 수많은 영어강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이 포스팅은 2015년 1월 5일부터 1월 29일까지 있었던, 삼성 드림클래스 2015년 겨울캠프 - 충남대 캠프의 이야기입니다.




<액티비티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백마상 앞에서>


* 면접

  2014 경희대 여름캠프에 이어서, 이번에도 좋은 기회가 닿아 이번에는 충남대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에는 수도권 강사들을 상대로 서울대학교에서 면접을 봤던 것과 다르게, 삼성 SDS 사옥(잠실)에서 면접을 치뤘습니다. 4인 그룹면접이 2:1 개인면접으로, 더 길어진 시강 시간(약 3분) , 별도의 인성검사를 치르는 등 강사를 선발하는 데에 있어서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었고, 최종 11:1의 경쟁률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강사들로 캠프가 구성되었습니다.

  수업강사(영어)로 지원했으며, 지난 번 캠프에 참여하여 좋은 성과를 거뒀던 것 위주로 어필하여 면접을 치뤘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 연수

  연수 역시 지난 캠프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었는데, 각 캠프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던 기존과는 달리, 성균관대 수원캠퍼스에서 전국 모든 캠프강사들이 단체로 연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대 수원 기숙사는 매우 좋았습니다..... )

  연수 프로그램 또한 다소 바뀌어, 강사 개인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키울 수있는 프로그램들과 교수법 등 학생과 강사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 위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매 캠프마다 그렇듯, 4일의 강사 연수 스케줄은 정말 타이트하다 못해 졸라매고 또 졸라매는 그런 스케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쉴 시간이 없어..ㅠ_ㅠ)



저는 지방권 캠프 충남대학교로 캠프 배정을 받았습니다.

 - 면접 이후 합격통지시 캠프가 발표되며 이는 무작위 배정입니다. 물론 해당 학교 학생은 그 학교에 지정될 확률이 높기는 합니다. 학교별로 해당 학교 수업강사를 일정 비율로 지정하여, 캠프 운영시 편리함을 도모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다 그런건 아니고...






 



드림클래스 캠프 3주차에는 대부분이 수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수도권 대학 캠프의 경우에는 8월10일 수원 대 제주의 K-LEAGUE 경기를 관람 할 계획이었으나

갑작스런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었습니다.





비 온 후, 경희대 제2기숙사에서 바라본 하늘






액티비티에 정말 큰 도움 준 5,6반 학생과 선생님들


마지막 액티비티 시간에는 각 조별로 액티비티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저희 조의 작품이 가장 훌륭했습니다.




끝난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다들 보고싶은 얼굴입니다.
힘든 일도 많이 있었지만 면접때 했던 말 그대로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동시에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힘들겠지만, 과정을 거치고 나서 성장한 아이들과 나를 보면서 얻는 행복은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즐거웠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 열빈 2014.08.19 22:48 신고

    8반 만세!!!

  2. 하늘보리찡 2014.08.24 04:09 신고

    으잉?????? 내가 알던 한 달에 한 번 블로그 맞나여?


 


2주차에는 본격적으로 수업이 진행됩니다. 물론 학생들이 너무 지치지 않도록 중간중간 행사들이 있고, 대학생 멘토들과의 대화를 통해 본인의 진로설정, 고민해결상담 등도 진행됩니다.



열정락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드림보드를 제작했습니다.




으-리




8월 1일에는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정락서 2014 OUTBREAK 행사가 있었습니다.




공중파 채널과 인터뷰하는 우리 선생님 ㅎ



수도권 대학 캠프 [ 연세대(송도), 고려대, 성균관대(수원), 이화여대, 경희대(수원) ] 이 참여한 8월 1일 열정락서에는


MC 정범균, 영어강사 이근철, 삼성병원 간호사 강국희, 탈북자 신은하 신은희 자매, 로이킴, 스피카(SPICA) 가 방문해 주었습니다.




저는 강사 대표로 드림레터에 당첨되어 스피카와 사진을 찍는 영광을 얻었으나 전날의 피로로 매우 피곤한 모습입니다.



전날 새벽 2시에 저희 반 아이 한명이 퇴소하는 바람에 피로의 여파가 가시질 않았지만, 가까이서 스피카를 본 것은 매우 좋았습니다. 악수도 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로이킴도 보고..





  8월 5일에는 이화여대와 함께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A&D홀에서 국립발레단 공연/ 팝페라 공연 / 경희대학교 태권도 시범을 관람했습니다. 이날은 정말정말정말 더웠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처음 왔을때보다 아이들이 긴장이 많이 풀렸습니다. 풀린 정도가 아니라 고삐 풀린 망아지 쯤 되고 있을 시점입니다.


  저는 강수진 선생님 바로 앞에 앉아, 맨눈으로 강수진 선생님을 보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14일까지(25일) 전국 주요 10개 대학에서 삼성 드림클래스 2014 여름캠프가 열렸습니다.

저는 경희대(국제)캠프의 수업강사(영어)로 이번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7월 21일- 7월24일은 강사 연수기간으로, 수업강사들이 먼저 캠프에 입소해 합숙생활을 하여 아이들의 교육 방법과 지도 방법, 교육 과정등을 먼저 숙지하게 됩니다. 또한 여러 외부강사로부터의 특강도 받게 됩니다.


7월 25일부터 입소식을 시작으로 3주(21일)간의 학습 캠프가 시작됩니다.

영어강사 2인, 수학강사 1인, 학생 10명으로 1반이 구성되며, 이번 경희대 캠프는 학생 200명, 수업/진행강사 및 진행팀 포함 100여명 총 300여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모습입니다.





기숙사 식당에서 첫 식사를 하는 모습. 어색함이 눈에 보이네요.

하지만 이 아이들은 3주후에 장난꾸러기가 됩니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A&D홀에서 강의를 마치고 1학년 5,6,7,8반이 단체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이 입소한 첫 주에는 TMD그룹에서 나오신 분들에게 듣는 자기주도학습 교육특강, 오리엔테이션, 수업 등이 진행됩니다.




수업도 열심히 듣고요




또한 캠프기간동안 2시간씩 10회에 걸쳐 액티비티 라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는 학생들에게 공부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주기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강사와 학생들이 자유롭게 주제를 정해, 3주간 꾸준히 진행하여 퇴소식 날 발표할 활동을 제작하게 됩니다.


저희 조는 립덥[Lip-dub ; 립싱크 더빙 영상제작]으로 정했습니다.


이외에도 붓글씨, 플래시몹, DIY명화제작, 걸그룹댄스 등이 있었습니다.




액티비티 활동의 노래를 열심히 외우는 학생들의 모습



저희 액티비티 조의 강사님들[1학년 5~8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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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뛰고있었다. 어느새 나도 뛰고 있었다.

동기들이 줄줄이 앉아있는 그 맨앞, 논산에서 봤던 그 회색 전투복을 입은 교관들이 서있다. 정신차릴 새도 없이 앉아번호가 시작된다. 잠깐 딴 데 보던 내 바로 뒤의 동기는 목덜미를 잡혔다. 덩달아 나도 굳는다. 2 missing. 1 missing. all present. 마침내. 180여명의 빡빡이들은 그렇게 단 몇분만에 칼같이 줄이 맞춰지고, 딱딱히 얼어버린채로 KTA행 버스에 탄다. 교관의 선글라스 속 눈빛을 읽을수가 없다. 버스 안에서, 입소 후에 간단히 교육을 받는다.

제일먼저 시작된 건 보급. 지금까지 훈련소에서 보급받았던건 다 버렸다. 전투복 일습 빼고 다. 내복, 로션, 스킨, 컵라면, 선크림, 다. 회색 디지털 무늬의 미군 보급을 받는다.


Oh my damn


가장 놀란건 운동화. 논산에서 그 돌같은 운동화 신고 어떻게 뛰었을까. 아니, 일부러 강해지라고 그런 운동화 주는건가?(논산에서 3km 달리기 할때, 1차엔 거의 낙오점수(18분)이었다. 초등학교때 기념 마라톤 참가한 이후로 3km이상 뛰어본적이없는데. 2차때는 15분정도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밖에서나 신던 러닝슈즈를 보급으로 받으니 이렇게 좋을수가. 나중에 알았는데 시중가 4~5만원 정도의 프로스펙스 러닝슈즈였다.(내가 전역할 때 쯤은 예산 문제로 더 하급의 운동화를 보급받거나 헀던걸로 기억한다.) 이걸 받았으니 달리기 하나는 열심히 하리라고 별 이상한 다짐을 했다.

스킨도 주고 로션도 준다. 좀 좋아보이는 옷들도 준다.(사실은 썩 그렇지도 않은) 받고 박스 까면 군대 안이나 밖이나 기쁨은 매한가지라는걸 알았다.


배정받은 배럭에서 옷을 입어보는데 새 전투복이 썩 맘에 든다. 물론 아직 하나도 어울리지 않지만.

배정받자마자 바로 Inspection에 대해 배운다. 미군에는 Inspection이란게 있는데, 이게 골때린다. 방 정비상태, 침대의 만듬새, 용의복장, 면도, 세면대, 방 청소 등 모든걸 보는데, 나는 이게 정말 교육대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면도기 위의 칫솔 각이 0.1도라도 흐트러지면, 일과 후 복귀했을때 치약으로 그래피티 된 멋진 세면대를 감상할 수 있다. 침대 리넨 접은각이 1도라도 벗어나면 중력을 거스르는 침대의 기적을 볼 수있다. 신발정리가 되어있지 않고 창문이 열려있었다면 나가서 신발을 찾아와야 했을 것이다.


3명이서 방 하나를 썼다. 네덜란드에서 지내다 왔다는 동기, 토익 990맞아서 어학병 갈거 확실 하다는 다른 동기. 그리고 그냥 최저점수맞고 회화해본적 없는 나. 그래도 다들 모나지 않아 지내는덴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물론 그땐 우리방이 저주의 방이 될거라곤 생각도 안했지만.

베드를 만드는덴 국군에서 쓰던 고무링이 도움이 된다길래 베드를 만들려고 침대 밑으로 갔다. 앞기수가 쓰고간 쪽지들이 나왔다. 아마 전통인듯 싶었다. 시험은 어떻게 보면 되는지, PT 열심히 하라는 둥, 자기들은 어딜 간다는 둥,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곳에서도 논산에서 썼던 것들에 이어서 꾸준히 일기를 썼다. 매일 쓰진 않았지만 전역할때까지 일기를 나름 꾸준히 썼는데, 하루하루 달력은 날짜를 지워나가는 맛이 있다. 그 맛은 남은 날짜가 하나 줄어든다는것보다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웠다는 큰 기쁨에서 온다.


군생활이 나를 많이 바꿔줬다고 생각하는데, 그 8할은 훈련소와 교육대에 있다. 가끔 그때 일기를 꺼내 읽어보지만 "아침에 화장실 가서 행복하다." 라는 글은 굳이 꺼내지 않아도 늘 새기는 말이다. 그땐 고기반찬 하나가 행복하고, 뜨거운 물 샤워 5분 하는게 행복하고, 화장실 한 번 맘 편히 갈 수 있으면 행복했으니까.


6월의 도봉산 밑 카투사교육대는 새벽엔 더럽게 춥고, 낮엔 더럽게 더운 날씨였지만, 나는 훈련받는게 좋았고, 배우는게 좋았고, 새로운 건 다 좋았다. 교관은 정말 좋았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가끔 드리고 있지만, 삶에 이렇게 열정적이고 사람의 가치를 생각해주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가르치는 사람이 같은 목표를 향해 갈때 느끼는 그 카타르시스, 학습자와 교육자가 공유하는 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생의 몇 안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쨌든 논산과 의정부를 거치면서 나는 (-)보다(+)가 많은 사람으로 많이 변해가고 있었다.


더럽게 추웠던 그 새벽들. 해도 안 뜬 4시에 일어나 PT도 해보고, 방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1호선 지하철 보면서 " 아 저거 타고 외박 나갔으면 좋겠다 " 매일같이 되뇌기도 해보고, flag detail 하다가 실수해서 미군 하사관한테 끝도없이 욕도 먹어보고. 욕 많이 먹어보고 많이 해봤지만, '알아 들을듯 말듯' 한 욕이 가장 기분 더럽다.


이제 적응도 되고 교육대 생활도 편해졌다고 생각 할 무렵, 자대선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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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g 2015.08.05 00:07 신고

    이게 끝인가요... 차분하고 담백한 맛이라, 더 읽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연출된 사진. 카투사는 대한민국 육군 약장을 착용하고, 왼쪽 흉부 상단 패치는 빈 것(blank)로 부착 ; 2015이후에는 한국군 패치.)


2012년 4월 23일, 체한 속을 부여잡고 아버지 차에 올라 논산을 향한다. 전날 잠은 잘 잤던것 같은데 왜 아침은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나 신기했던건, 중간에 들렀던 휴게소에 '도미노피자(!)'가 있었는데 조각으로도 팔더라는 것. 물론 속이 좋지 않아 먹지 않았다. 논산 근처 음식점은 모두 맛 없다는걸 잘 알고 있지만, 가장 먼 데로 골라 갈비탕을 먹기로 했다. 물론 멀다고 맛이 있는건 아니다. 전쟁통에 먹는 갈비탕도 이보다 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 거기서 나는 몇년만에 얼굴도 기억 안나는 6촌 형님을 다시 만났다. 같은 카투사 기수로 들어간다는게 참 신기한 일이었다. 사실 신기할 여유는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잔뜩 구르게 생겼는데.. 그래도 마음 의지할 곳은 생겼다고 다행이라 여겼다.


벚꽃 지는 연병장을 돌아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막사를 향한다. 마지막까지 울지 않고 잘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저 너머 스탠드에 서계신 부모님을 보면서 참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입대라는건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나보다. 나는 끝끝내 울음을 참았고, 어금니가 다 뭉개지는 줄 알았다.


입소대대에 있었던 첫 3일은 정말 영겁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찰나의 영겁이 나를 좀더 빠르게 적응하게는 했나보다. 잘 했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분대장 훈련병이란 것도 해보고 별 사고 없이 훈련을 받았다. 사실은 극한상황에 괜히 진지해지는 나쁜버릇이 있어서 분대원들한텐 자주 미움을 샀다. (아직도 미안한 부분.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여유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훈병이 까여봐야 얼마나 까인다고..) 논산에서 받는 훈련이란건 5-6주 과정을 받는 누구나 다 똑같이 받는 과정이니 논산훈련소를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자취를 다 알것이라고 본다. 영외교장으로 갈때마다 맡았던 그 딸기밭 냄새는 아직도 코끝에 진하다.


군대체질은 결코 아니었지만, 훈련소 생활이 마냥 짜증만 나는것도 아니었다. 비록 사격훈련은 영 아니었지만(긴장해서 그랬던걸까. 논산에서도, KTA에서도 턱걸이 사격이었는데 자대받고나선 보통 37/40 이었으니까)다른 훈련같은건 배우는 재미도 있고, 밥이 맛있었단게 참 기분좋은 기억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극한상황에가면 참 예민해진다는게, 그래도 배울만큼 배웠다는 애들이 논산에서 닭튀김 몇개가지고 언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것.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고 할 밖에. 훈련소에서의 닭튀김은 그런 의미였다.


마지막 30km 야간행군. 그 밤에 참 많은것들이 있었다. 앞친구 럭색에 딱다구리질 하면서 걷는 모두들. 초코바에 음료수 하나로 버틴 9시간. 다 터져버린 발바닥. 늦장부린 군악대때문에 3km를 더 걸어야 했던 일, 다음날 새벽의 닭죽. 그리고 연대목욕탕.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 막상 수료식 때가 되니 뭘 많이 먹을수가 없더라. 훈련 받는 40일 내내 수첩엔 먹고싶은것만 잔뜩 적었었는데. 아버지가 직접 달아주는 이등병 약장. 이 고생을 하고 겨우 배터리 한칸 채웠는데 언제 완충해서 나갈까. 이게 첫 발이고 이게 제일 쉬운 나날들이었을 텐데, 앞으론 얼마나 깜깜한것들이 있을까. 그냥 생각 않기로 했다.


이틀 뒤. 그러니까 6월 1일. 우리는 의정부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깝깝한 수송대대놈들이 좀 재수없게 군게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전투식량이 맛있으니 그걸로 됐다. 같은 분대였던 형이 옆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이 형하고 그렇게 얼굴을 오래 볼거라곤 그때는 생각 못했다.

강경에서 갈아탄 우리는 창밖 구경이나 하다가 퇴계원 역에 내려졌고, 간만에 보는 바깥공기 맡을 새도 없었다.

동기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다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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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쭈니러스 2014.02.22 22:35 신고

    저도 입대하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고요;;; 다들 똑같나 봅니다^^;;

    아~ 그리고 이건 한가지 바람인데요~ 글씨 크기를 좀 더 크게 하면 읽기 편하지 않을까요?? 1번째 글은 모바일로 읽어서 몰랐는데 이건 PC로 보니 읽기가 불편하네요^^ 개인적인 생각이니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세요ㅎㅎ

    그리고 저도 제 블로그에 수필 적고 있습니다^^ 시간 되시면 방문해주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 live brilliant 2014.02.24 15:08 신고

      글씨가 좀 작나요? 폰트때문은 아닌것같고 너무 크면 지저분할까봐 그냥 뒀는데... 한번 키워봐야겠네요 관심감사합니다. :)

  2. 지식전당포 2014.02.23 02:58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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